- 뒤에 실린 윤용호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만약 이 작품이 주목받지 못했더라면, 한트케가 47그룹에서 한 행동(그러니까, <양철북>의 작가인 귄터 그라스를 비롯한 47그룹 작가들을 “서술 불능자”로 비난한 것)은 젊은이의 일시적인 치기로 간주되었을지모른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목을 <관객모독>으로 짓는 것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니다. 서양연극이 지금껏 관객을 대접하여 ‘편하게’ ‘집중하여’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은, (책에서도 비슷하게 언급되었듯) 바로 연극 자신과 극이 갖고 있는 의미에 집중하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하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잘 듣게하기 위해서라도 청자를 배려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트게는 연극과 관객 사이의 암묵적인 형식을 거부하겠다는 것이고, 이 도발은 그에 걸맞는 극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지 않고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 작가는 이 어려운 과제를 잘 해결해낸다. 이 연극이 관객을 모독해도 되는, 아니 모독해야하는 이유는 거꾸로 ‘극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관객모독>은 끊임없이 자신이 “아무것도 연기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극에 입장에서 전달해야할 것이 없으니, 연극은 더 이상 관객의 비유를 맞출 필요가 없다. 연극이 사라지면 남아있는 것은 관객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관객)이 주제”이며, “여러분(관객)이 우리 언어의 중심”이 되게 된다.
“여러분은 이미 나름대로 생각했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무엇을 거부하는지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반복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항변하고 있다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이 연극에 대한 토론이라는 것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이 작품의 변증법적 구조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확고한 반항 정신도 아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작품 의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인식하셨을겁니다...(중략)...이제 여러분은 알아차립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너무 느립니다. 이제야 여러분은 우리 속셈을 아셨습니다.” (<관객모독>, 31p)
“우리가 여러분에게 욕설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우리가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는 못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과 우리 사이 거리는 더 이상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욕설을 듣게 되면, 여러분의 몸은 부동자세로 경직될 것입니다...(중략)....우리는 다만 청각적 이미지를 만들 뿐입니다. 여러분은 당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사전에 주의를 받았으니까, 욕설을 들어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욕설을 구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쉬지 않고 ‘너’라고 말할 것입니다. 너희들이 우리 욕설의 주제입니다. 너희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경청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들, 눈딱부리들아.” (<관객모독>, 58p)
- 이제 관객들이 기대했던 연극은 없고, ‘관객’과 그들의 관습적인 세상에 대한 작가의 비판은 시작된다. 작가에 따르면 이런 연극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연극’이다. (이때 잠시 소쉬르가 ‘인간의 언어’를 가장 순수한 가치체계로 본 것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트게에게 ‘순수한 연극’은 시간이 의식되지 않은 것이되, 그것이 (다른 일반적인 연극들처럼) 가상의 시간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무관해야하는 것이기 떄문이다. 그러니까 만약 연극이 연극 이상의 역할, 즉 현실을 의미한다면, 그 현실이란 대체된 가상적 의미체계가 아니라 ‘어떤 사실도 연기되지 않는’ 시간과 무관한 연극(바로 이 <관객모독>)이어야한다는 것이 한트게의 주장이다.
- 이 연극이 일종의 파격을 준다는 점에서, 세일즈 포인트는 확실하다. 한트게가 이 연극으로 말미암아 대중적인 인기를 끈 첫 번째 이유다. 그러나 이 극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내건 혁명의 깃발에 있다. 한트게가 내건 혁명의 깃발은 다른 대중을 향하지 않고 (좁게는 연극, 넓게는 세계) 그 자신을 향한다. 오직 자신에 대한 끝없는 저항정신만이 자신을 모독할 수 있게 하며, 자신을 ‘주제’로 삼아 해체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한다. <관객모독>의 앞부분인 “배우를 위한 규칙들”에서 배우들에게 일상과 대중문화 속에 살아있는 저항적인 순간을 보거나 듣도록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나의 감상만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이 책을 읽고 썩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책으로 욕을 먹어보는 건 역시 낯설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울림이나 감동을 준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작가 자신도 결코 관객(혹은 독자)가 이 작품으로부터 감동받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를 처음 보았을 때보다 <관객모독>을 읽었을 때 훨씬 더 놀랐다. 내가 놀란 것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관객들 소리 같은)이 연극의 파격적인 형식이 아니라, 앞서 내가 말했듯 이 극이 던지고자 한 화두였다. 한트게의 입장으로 비추어보자면, 연극적 수단을 통해 사회변혁을 꾀한 브레히트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 <관객모독> 보면서 나는 내가 쓰던 이야기나 그리던 장면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의 그림은 그와 같은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가, 그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저항정신만이 무언가를 쓰고 그리는 것의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한트게가 고작 만 23세에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경이롭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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